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태종 10년인 1410년 창건되었다. 사적 제339호로 지정된 경내에는 보물 제931호인 이성계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모신 본전과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공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 조선의 여러 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사고, 예종의 탯줄을 묻은 태실등의 유적이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아산, 묘향산, 적상산 등으로 옮겨졌던 어진은 1614년 경기전이 중건되면서 다시 돌아왔다가 동학혁명 때 위봉산성으로 옮겨져 화를 면했으며 현재 경기전에 모셔져 있는 어진은 1872년 서울 영희전의 영정을 모본으로 해서 새로 그린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히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함을 보여주는 전동성당은 호남지역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원래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중국에서 벽돌 제조 기술자를 직접 데려 오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공사 시작 7년 만인 1914년 완성되었다. 영화 「약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텅 빈 성당에서 슬픈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촬영한 곳으로도 유명한데 성당 내부의 둥근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우며 화강암 기단 위에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 외관과 중앙 종탑을 중심으로 작은 종탑들을 배치한 상부의 조화로 웅장함이 느껴진다. .

 

전라북도 전주시의 완산구 풍남동에 위치한 작은 언덕이다. 경기전에서 약 동남쪽으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언덕의 정상은 평평하고, 그 아래에는 전주천, 한옥 마을, 한벽루(寒碧樓), 전통문화센터 등이 있다. 정상은 1380년(고려 우왕 6)에 남원의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가던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장군이 이곳에서 승전 잔치를 베푼 곳이다. 조선왕조를 개국하고 나서 여기에 정자를 짓고, 이름을 오목대(梧木臺)라 했다. 이곳에 오동나무가 많았기에 언덕의 이름을 오목대라는 설이 있다. 『여지도서』(전주)에 "발산 아래에 오목대가 평평하게 펼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완산지(完山誌)』에 "발산(鉢山) 아래에 있는 돈대이다. 평탄하게 펼쳐져 위에서 전주성을 아래로 굽어보고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정상에는 고종(高宗)의 친필인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 비문이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 양반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나라에서 세운 학교이다. 전주향교는 세종 23년(1441) 경기전 근처에 지었다가 전주 서쪽의 화산 기슭으로 옮겼다. 그러나 향교가 전주성 밖에 있어 다니기가 불편하자, 선조 36년(1603) 전라감사 장만(張晩)이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현재 경내에는 공자 등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 공자 아버지의 위패를 모신 계성사(啓聖祠), 중국과 우리 나라의 훌륭한 유학자 분들의 위패를 모신 동무(東撫).서무(西撫), 유학을 가르치던 명륜당(明倫堂), 그리고 학생의 기숙사로 사용한 동재(東齎)와 서재(西齋) 등 많은 건물이 남아 있다.고려 말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당시의 위치는 현재 경기전(慶基殿) 근처였으나 태조(太祖) 이성계의 수용(?容)을 봉안하기 위하여 경기전이 준공되자 1410년(태종 10) 전주성의 서쪽 황화대(黃華臺) 아래로 이전하였다.

 

보물 제583호. 주관(主館)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팔작지붕건물. 본래 전주객사는 전주사고(全州史庫)를 건축할 때 그 남은 재료로 1473년(성종 4)에 서익헌(西翼軒)을 개축하였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이보다 앞서 객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이 객사에는 진남루(鎭南樓)라 이름하는 주관과 그 양측에 매월당(梅月堂)·청연당(淸讌堂)의 두 익헌이 있었고 삼문(三門)과 담장으로 둘러싸인 것이 있으나 현재는 주관과 서익헌, 수직사(守直舍)만이 남아 있다.

‘豐沛之館(풍패지관)’이라 쓴 편액(扁額)을 건 주관건물은 장대석을 한벌쌓기한 낮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기둥 위에는 창방을 끼고 공포를 주상에만 짜올렸다.
 

 

전주시에서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담장 벽화사업으로 교동 자만마을 꿈과 희망이 가득한 행복한 마을로 꾸며져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있다.
이 마을은 전주한옥마을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전주의 혈맥을 잇고 있으나, 산자락에 위치해 갈수록 노후화되고 삭막하게 변함에 따라 그동안 퇴색됐던 주변 오목교 난간 보수 및 도색, 벽화작업 등을 통해 화려하게 새 단장됐다

여기에 골목길 주택 40여채 곳곳에 따뜻하고 생동감 있게 꽃을 테마로 한 동화, 풍경 등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반영해 갤러리 벽화를 조성해 삶과 추억이 깃든 골목길로 재생됐다.또 마을의 특색을 살리면서 미관을 개선해 생동감 있는 아름다운 담장으로 탈바꿈했으며 주민들에게 활력있는 삶터를 제공하는 한편 새로운 문화관광자원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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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읍성의 남문이다.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으며, 1734년 영조의 명으로 개축되었다. 176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관찰사 홍낙인이 다시 지으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1층이 정면 3칸, 측면 3칸, 2층이 정면 3칸, 측면 1칸의 중층문루(重層門樓)의 팔작지붕이다. 1768년(영조 44) 건립한 것으로 전한다. 일반적인 성문건축과 같이 성벽의 일부를 형성하는 석축기대(石築基臺) 중앙에 홍예문이 있으며 그 위에 중층의 문루를 세웠다. 하층 내부에 앞뒤 두 줄로 4개씩 세운 고주(高柱)가 그대로 연장해서 상층의 변주(邊柱)가 되었으며 이러한 기둥 배치는 한국 문루건축에서는 드문 형식이다.

 

전주시 완산구 교동(校洞)·풍남동(豊南洞) 일대 7만 6320평에 700여 채의 전통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마을은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성곽을 헐고 도로를 뚫은 뒤 일본 상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자 이에 대한 반발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현재까지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문화공간으로는 판소리·춤·타악 등 전통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전주전통문화센터, 막걸리·청주의 제조과정 관람과 시음까지 할 수 있는 전주전통술박물관, 숙박을 하면서 온돌과 대청 마루 등 한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주한옥생활체험관, 전통 공예품을 전시하는 전주공예품전시관 및 명품관 따위가 있다.

 

우리 음악과 세계음악이 만나는 소리축제에는 흥겹게 즐길 수 있는 알찬 공연이 많다.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의 야외 공간인 놀이마당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무료 공연’이 이어지는 공짜 마니아들의 명소다. 한국전통예술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명창들의 판소리, 다채로운 공연을 보여주는 해외초청작, 새로운 감각의 창작 판소리 등을 가을햇살 아래서 즐겨 보자.바람 선선한 가을날, 예향 전주에서는 소리의 원류를 찾아가는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열린다. 소리축제를 여는 첫 무대에서는 매우 귀에 익은 우리 소리들을 다양한 퍼포먼스로 담아낸다.